결국 무더기 ‘집단사직’ 한 의대교수, 의대 증원 배정 ‘선(先) 철회해야’ 촉구
물러섬 없는 의료계, 의협 주수호 “의사, 의대 증원은 의료 농단이라 규정”
한동훈, 갈등 장기화에 중재 나서···尹, 韓 요청에 ‘행정처분 유연 처리’ 주문
尹·韓 행보가 못마땅한 야권, 이재명 “의정 갈등, 정부 일이지 당의 일 아냐”

(왼쪽부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의대 증원 확대에 반발하여 피켓 시위를 하고 있는 의사협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 / 이훈 기자(좌), 유우상 기자(중), ⓒ뉴시스(우)
(왼쪽부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의대 증원 확대에 반발하여 피켓 시위를 하고 있는 의사협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 / 이훈 기자(좌), 유우상 기자(중), ⓒ뉴시스(우)

[시사포커스 / 이혜영 기자]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의대생 2000명 증원 철회’를 대화 선결 조건이라고 내걸면서 줄줄이 무더기 사직의 집단행동에 돌입하여 의정(醫政) 갈등 상황이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4·10 총선을 앞두고 있는 여야의 정치권에서는 의대 증원 갈등 이슈을 두고 각자의 유불리 셈법을 따지며 대립하는 양상을 보여 관심이 집중됐다.

◆ 의대 교수, 결국 무더기 ‘집단사직’···의대 증원 ‘선(先) 철회해야’ 대화 가능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각 의대에 소속된 교수들은 오늘부터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거나 일괄 사직을 결의한 상황이라고 전해졌는데,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2000명 의대 증원의) 파국을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교수직을 던지고, 책임을 맡은 환자 진료를 마친 후 수련병원과 소속 대학을 떠날 예정”이라면서 오늘부로 집단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대한민국 의료를 살리는 골든타임의 마지막 순간에 도달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와의 대화에 나설 두 가지 전제 조건에 대해 “▲전공의에 대한 사법적 조치를 거두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할 것과 ▲정부와 전공의를 포함한 의료계가 함께 협의체를 마련해 의대 정원을 비롯한 대한민국 의료정책을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하여 수립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성명에 참여한 의대는 전국 40개 의대 중 19곳의 대학이었는데, 세부적으로는 ▲강원대 ▲건국대 ▲건양대 ▲경상대 ▲계명대 ▲고려대 ▲대구가톨릭대 ▲부산대 ▲서울대 ▲연세대 ▲울산대 ▲원광대 ▲이화여대 ▲인제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한양대 등이었고, 이들을 제외한 다른 의대 교수들도 조만간 집단사직 행동에 대한 동참 여부를 결정짓고 행동에 옮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고려대 의대 비대위도 이날 성명서를 통해 “의료서비스에 불편함을 느끼게 된 상황에 사과를 드리지만,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집단적 영달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바로잡고자 교수들에게 환자를 잠시 부탁한 것”이라고 주장을 펼치면서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 의사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잘못된 정책에 손상되지 않도록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김창수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도 이날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대 입학정원의 증원은 의대 교육의 파탄을 넘어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붕괴시킬 것”이라며 “정부가 입학정원과 정원 배정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이번 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고 못 박으면서 정부의 의대 증원 배정 선(先) 철회를 촉구했다.

◆ 강경 대응 이어가는 의료계, 주수호 “의사들, 의대 증원은 의료 농단이라 규정해”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이 25일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는 길에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이 25일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는 길에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사진 / 오훈 기자]

더군다나 의료법상 업무개시명령 위반, 업무방해 교사·방조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날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 앞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늘은)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그들의 스승이자 선배인 대학교수들께서 혼신의 힘을 다해 버텼으나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사직하기로 결정한 날”이라고 설명하면서 “예견된 사태이며, 의사를 압박하면 대화의 장에 나올 거라고 생각한 정부의 착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주 위원장은 “의사들은 이 2000명 의대 증원 사태를 ‘의료 농단’이라고 규정한다. 대한민국 의사가 부족하다는 왜곡된 선동에 의해서 시작된 것일 뿐”이라면서 “원인과 책임 규명에 대한 국정 조사를 국회에 요구하고 책임자 처벌도 강하게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사실상 정부가 2000명 증원을 철회해야만 의료체계가 정상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시켜줬다.

하지만 정부 측인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빠른 시간 내에 정부와 의료계가 마주 앉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면서도 “27년 만에 이뤄진 의대 정원 확대를 기반으로 의료개혁 과제를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말해 재차 의대 증원 정책은 양보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히고 나섰다.

그래서인지 이날 중대본 회의에서는 비상진료 인력이 효율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의료기관 외 의료행위 한시 허용 방안’도 논의됐는데, 즉 정부는 의료법 예외 규정에 근거해 보건의료 재난위기 ‘심각 단계’ 기간에는 소속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도 진료가 가능하도록 임시 조치를 취하면서 비상 의료체계 확대로 응수했다.

다만 의사집단과 정부의 ‘강대강 대치’ 장기화에 대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비판의 목소리를 나섰는데, 실제로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의료대란은 총선 득표용 게임이 아니라 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붕괴시키는 대재앙”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정부를 향해 조속한 진료 정상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자신들도 진료 정상화를 촉구하는 실천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더욱이 보건의료노조는 의사들을 향해 “전공의들의 진료 거부로 수술환자, 암환자, 중증질환자, 응급환자들이 벌써 한 달 이상 제때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의료체계의 중추 역할을 맡아왔던 수련병원들은 직격탄을 맞아 진료 기능이 마비되고, 비상경영체계에 돌입했다”며 “더군다나 PA(진료보조) 간호사들이 의사가 해야 할 의료행위를 떠맡고, 노동자들은 무급휴가와 강제연차휴가, 임금체불 위협에 내몰리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면서 의사들의 무책임한 집단행동을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 의정 갈등 장기화에 중재 나선 한동훈, 韓 요청에 尹 ‘행정처분 유연 처리’ 주문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 20일 오전 경기 안양 초원어린이공원 거리인사 중 발언하고 있다. 사진 / 김경민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 20일 오전 경기 안양 초원어린이공원 거리인사 중 발언하고 있다. 사진 / 김경민 기자

한편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두고 정부와 의사들이 한 달 넘게 평행선의 강대강 대치전을 이어가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중재자로 나서며 국면 전환을 꾀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는데, 실제로 전날 오후 한 위원장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열린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과의 간담회에 참석한 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이 피해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의료계 간의 건설적인 대화를 중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앗고, 의료계에도 정부와 건설적 대화에 나설 준비되어 있다는 말씀도 저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 위원장은 “저는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면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제가 하는 것이 건설적인 대화를 도와드리고 문제 푸는 방식을 제시해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지켜봐 달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한 위원장의 ‘전공의 면허정지 행정처분 유연 처리’ 요청에 대해 화답에 나서면서 실제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당과 협의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한 위원장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의대 교수들은 집단사직 행보를 이어나갔는데, 이와 과련해 한 위원장은 이날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열린 현장 중앙선대위 회의 직후 취재진들과 만난 자리에서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떻게 한 번에 모든 게 다 끝나겠나”라면서 “파국을 막기 위한 중재를 하겠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고, 그건 중재가 필요하다는 간절한 호소를 제가 들은 것이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도 한 위원장은 “(의사들) 그분들도 그동안 입장이 있을 것”이라며 “더군다나 한 단체가 아니라 다양한 단체가 있기 때문게 의사 선생님들께 시간이 좀 필요한 면이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다만 한 위원장은 의정 갈등의 핵심인 의대 증원 규모 조절 필요성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 “정부가 해온 방향성에 대해선 많은 국민이 동의하고 계실 것이지만 그러나 제가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는 건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을 아끼면서 “이 문제에 있어 건설적 대화의 중재자로서, 그 문제를 조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정치의 역할을 하겠단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 한동훈 행보가 못마땅한 野, 민주당 “정부의 일이지 당의 일 아냐, 총선용 기획”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연합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연합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반면 야권에서는 의정 갈등의 ‘중재자’로 나선 한 위원장의 행보에 대해 매우 못마땅해하면서 대립각을 세우고 나선 분위기였는데, 실제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경남 창원 유세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건 정부의 일이지 당의 일이 아니다”며 “정부에 총리도 있고 보건복지부 장관도 있는데 갑자기 여당 대표가 자기가 이 일을 부탁받아 맡게 됐다고 한 것은 약간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이어 이 대표는 “물론 당이 나설 수 있고 우리도 열심히 노력하지만, 정부 역할은 정부가, 당의 역할은 당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혹여라도 정략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지 않기를, 오로지 건강권, 국민 생명, 안전 측면에서 진지하게 성실하게 이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정부와 대통령실 측에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같은당 홍익표 원내대표도 이날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하여 “정부가 (의료계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2천명(증원)을 밀어붙이다가 이제는 현장에서 의료 공백이나 국민 피해가 확대되니까 마치 이것을 당이 수습하는 형태로 일종의 발 빼고 모양새를 만드는 형태”라면서 “총선에 불리할 것 같으니까 이제야 발 빼는 모습을 하는 것은 책임 있는 국정 운영의 자세는 아닌 것”이라고 비판에 가세했다.

더욱이 홍 원내대표는 한 위원장이 의정 갈등 중재자로 나선 것에 대해서도 “예상했던 총선용 기획”이라면서 “의대 증원 문제를 가지고 ‘의사 때리기’를 통해 정부가 일한다는 이미지를 만들고 나중에 가서는 의사단체에 대폭 양보해서 문제를 봉합하는 방식으로 당이 수습하려고 하는 것이 애초에 시나리오였다고 본다”고 의구심을 내보였다.

그러면서 홍 원내대표는 “애당초 우리나라의 의료 공공성을 높이겠다는 것보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 문제를 활용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하면서 “총선 이후에 우리가 합리적 규모의 의대 정원 규모를 제안할 것”이라고 피력해 사실상 의정 갈등에 대한 주도권을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엿보였다.

뿐만 아니라 ‘정치 9단’이라고 불리는 민주당 원로의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강하게 밀어붙이고 전공의 등 면허취소, 출국금지, 구속을 운운하다가 이제 선거를 목전에 두고 한동훈을 띄운다”고 비판하면서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의료현장의 혼란과 갈등은 키울 대로 키우고 이제 ‘제2의 노태우, 6·29 선언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데, 국민과 의료계를 졸로 보면 큰 코 다친다. 꼼수는 꼼수로 망한다”고 비난했다.

이에 더해 조국혁신당 김보협 대변인도 한 위원장이 의료계와 면담을 가진 것이 알려진 직후 논평을 통해 “여권 내부의 짜고 치는 도박이다. 어디서 많이 본 시나리오”라고 쏘아붙이면서 “갈등이 벌어지면 대통령실은 버티고 한동훈 위원장이 나서서 중재하는 일이 반복된다. 대통령실은 부인했다가 나중에 한 위원장 말을 들어주는 모양새를 취한다. 국민에겐 걱정을, 한 위원장에게는 표를 안기는 행태의 반복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 나아가 김 대변인은 “이번에도 의정 갈등으로 국민 불안이 극에 달하자, 한 위원장이 나서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단과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했고 또 기다렸다는 듯 윤 대통령이 대화 지시를 내렸는데,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며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스토리가 빤한 통속극을 되풀이하기보다는 미리미리 국민의 걱정을 덜어 줘야 할 것”이라고 대립각을 세워 사실상 의정 갈등에 대한 주도권 다툼을 하는 모양새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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